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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신예식장 백낙삼 별세 +사망 원인 빈소 발인 경남마산의료원 장례식장이슈 2023. 4. 29. 00:35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신신예식장
개업일
1967년 6월 1일
대표
백낙삼 (1930~2023)
이사
최필순
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몽고정길 121 신신예식장[지번주소]
대표번호
1967년 6월 1일에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3층 건물을 구매해 문을 연 창원에서 제일 오래된 예식장.
백낙삼 대표와 최필순 할머니 두분이서 운영하시며 돈이 없어서 결혼식도 제대로 올리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사진값 등 최소 비용만 받고 예식을 치르도록 도왔으며, 2019년 국민훈장을 수여 받은 후 사진값도 받지 않는다고 한다.
2022년 4월, 백낙삼 대표가 옥상에 심은 채소를 보러 갔다가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으나, 부인과 아들 백남문씨가 계속 운영하기로 하면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백낙삼 대표는 2022년에 뇌출혈로 쓰러지기 이전에도 생사에 고비가 왔던 적이 있는데, 2005년에 대장암 3기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어느 날 손님이 남편이 대장암 말기라 죽기 전에 결혼하고 싶다고 하는 식으로 대화를 했었는데 그 자리에서 진료를 권유받았다고 한다.
수술 당시 운이 정말 좋았는데, 종합병원에 전화를 한 다음날 바로 입원실이 나왔다고 하며 수술도 곧바로 하게 됐다고 한다.
병원 입원이나 수술 모두 운이 나쁘면 몇 달은 기다려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운이 좋은 케이스.
아들은 부모님을 돕기 위해 대학도 사진학을 전공했다.
2023년 4월 28일,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향년 93세. 상술한대로 쓰러진 이후 요양병원서 계속 투병생활을 해 왔었다고 하며 아들 백남문씨는 별세 당시 주무시듯이 편하게 가셨다고 언급했다. 빈소는 경남마산의료원 장례식장202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30일 오전 9시 30분이다.
인터뷰에서 예식장 사업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그는 처음에 사진관으로 시작했는데 문득 본인처럼 돈이 없어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애태우는 분들이 주위에 많이 있어 늘 마음에 걸렸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진관을 운영한다는 생각으로 사진촬영비만 받고 결혼식은 무료로 시켜주고자 사업 구상을 했던 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이 사무실로 올라오더니 “전남 순천에서 예식장을 짓고 지나는 길인데 여기에 예식장을 하면 잘 될 것 같다”고 하더라며, 일이 잘 풀리려고 하니 이렇게 연이 닿더라고 신기해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그 사람에게 일을 맡기게 됐고 초창기 신신예식장이 탄생했다고 사연을 털어놨다.
초창기에는 하객들이 앉을 의자도 없어 목수에게 긴 벤치를 맞추고, 또 웨딩드레스도 사진촬영용으로 한 벌이 있었는데 그것을 억지로 입혀 예식을 올렸으며, 당시 첫 번째 손님인 신부의 오빠는 앞으로 이렇게 하면 잘 될 것이라고 하여 실행했는데 정말로 손님이 많이 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주례가 아쉽다는 말이 나오면서 직접 주례를 시작했다. 당시 30대인데 젊은 사람이 주례 한다는 게 우습게 여겨질까봐 주례를 서기 위해 일부러 공부를 또 했다고 한다.
1970년대 당시 예식장 사업이 허가제로 바뀌면서 고비가 찾아왔다.
당시 법이 바뀌면서 경남도 1호로 예식장 사업 허가신청을 했지만 허가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공문이 왔고, 시청에서는 예식장 간판을 떼는 일이 발생했다.
시는 불법이라고 간판을 뗐으나 직접 다시 붙였다고 한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당시 보건사회부 장관에 직접 질의를 했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예식장 허가를 받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입장을 전달받고 지금까지 선행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고 한다.
1988년에 동네 어른들의 추천으로 국민포장(효자)을 수상했다. 그때 받은 상금 50만원에 사비 50만원을 더해 ‘신신장학회’도 만들었다. 그렇게 1989년 3월 신신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10만원씩 6명에게 전달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4회에 걸쳐서 총 30여명에 장학금을 지원했지만 1992년 자금이 부족해져서 그만두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사기를 당해 1억여원의 빚을 진 적이 있었는데 그 건으로 인해 예식장이 경매에 넘어간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외환위기로 손님들이 예식장에 몰리면서 그 많은 돈을 빨리 갚게 됐다.
영화 국제시장 촬영 장소이며, 대표님이 사진사 역으로 잠깐 출연했다. 그리고 1970년대 드레스도 협찬 해줬으며, 부케는 아내분이 직접 만들었다.
백낙삼 대표는 1953년 중앙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했지만, 졸업 1년을 앞두고 형편이 어려워져 학업을 중단했으나, 집안의 사업 실패로 백낙삼씨를 불러들였고 가족들이 거주하던 부산으로 돌아가서 일을 해야 했었다.
2015년 그간의 봉사활동 정신과 실적 등을 인정받아 입학한 지 62년 만에 졸업장을 수여받았다.
창원조각비엔날레 전시장으로도 사용됐다.
백 대표의 딸이 다름 아니라 박노자 교수의 부인이다. 즉 백 대표가 장인인 셈. 러시아 음대 재학중 만났고 결혼도 역시 신신예식장에서 했다. 다른 딸도 일본인 남성과 결혼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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